(이야기 소개)
2011년. 제가 호주로 워홀을 가서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그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파워 J였던 나는 호주에 도착하자 마자 해야 할 일들을 미리 한국에서부터 리스트업을 해두었다. 처음으로 호주땅을 밟고, 브리즈번 백패커에 짐을 푼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해야 할 일을 챙겼다. 정착 초기, 가장 먼저 할 일은 3가지였다.
1.휴대폰 개통하기
2.은행 계좌 개설하기
3.세금번호 신청하기
나의 목표는 이 3가지를 빠르게 끝내고, 빠르면 호주 도착후 3주차부터는 농장에서 일자리를 구해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주나라’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와 페이스북을 열심히 뒤져가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브리즈번에서 차로 약 4시간 떨어진 번다버그라는 지역의 일자리에 연락이 닿았다. 그 곳은 숙소 및 조식이 제공되는 곳이었고, 다양한 농장일도 중개한다고 했다.
하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백패커에서 짐을 정리했고, 다음날 오전 번다버그행 기차에 올랐다.
(브리즈번) 사우스뱅크 ; 도심 속 인공수영장
그러나, 이것이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번다버그에 도착하여 역사를 나오자, 어떤 한국인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브리즈번에서 전화하신 분 맞죠?”
“아.. 네..!”
내가 약간의 경계를 하며 대답했다. 그는 내가 연락한 일자리의 매니저였고, 나에게 본인과 함께 가면 된다고 말을 덧붙이며 나의 캐리어를 차에 실었다.
“보증금 있는건 아시죠? 1,000불 주시면 돼요”
하며 그 매니저가 나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알 수 없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나는 그에게 서둘러 현금을 건냈다. 그 당시 환율로 약 120만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전재산이었다.
번다버그역에서 차로 30분,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뭔가 잘 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주 오래되 보이는 가정집이었는데, 인신매매를 한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첫인상이었다. 집안 내부 환경은 매우 비위생적이었다. 방안 곳곳 먼지는 쌓여 있었고 물건들은 여기 저기 늘어져 있었다. 조식이라고는 식빵과 잼, 그 뿐이었다. 화장실은 가장 최악이었다. 녹슨 샤워기에서는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화장실 문이… 없었다.
패닉이 왔다. 이거 뭔가 단단히 잘 못 됫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지? 다시 브리즈번으로 가야 하나?
말그대로 멘붕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피곤함이 자꾸 몰려와 눈이 계속해서 감겼다. 도착하자 마자 ‘망했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숙소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뮤지컬을 전공했다는 28살의 K였다. 그녀도 나처럼 당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매니저를 찾아가 따져 물었고, 한동안 큰소리가 오고가는 것이 들렸다. 1시간여가 흐르고, 그녀는 방에 돌아와 풀었던 짐을 다시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숙소를 박차고 나가며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씨드니, 정신차려. 여기 사람이 살 곳이 아니야. 이거 완전 사기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숙소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일단 너무 무서웠다. 또한, 차도 없어서 어디론가 이동도 불가능 했으며, 이미 전재산이었던 보증금을 전부 지급한 상태였다. 나는 일단 여기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불편하고 힘든 마음에 잠을 설쳤다.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으로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마치 숙소에서 나쁜 공기를 내뿜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새벽 5시,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농장으로 향했다. 주키니(애호박 종류)농장이었는데, 5분정도 수확하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바로 양동이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호주 농장은 대부분 ‘컨츄렉(Contract)’ 이라고 해서, 본인이 일하는 만큼 돈을 받아가는 고용형태가 많았다. 그 곳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보증금 만큼만 벌어서 빨리 탈출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미친듯이 주키니를 따기 시작했다.
1시간동안 양동이 4개 하고도 절반을 채웠다. 허리를 숙이고 해야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허리는 끊어질 듯 했고 온몸의 근육도 아파왔다. 드디어 정산의 시간! 나는 내심 기대하며 매니저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에게 전달 된 금액은.. 9달러. 한국돈으로 1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매니저에게 뭔가 잘못 된거 같다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희망을 와장창 무너뜨렸다.
“그 금액 맞아요. 총 9달러”
2차 패닉이었다. 시간당 9달러라고 했을 때 반나절가량 일하게 되면 36달러. 그러나 이 것은 다른 농장뿐 아니라, 호주 시티잡에 비하면 정말 낮은 시급이었다. 무엇보다 몸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몸은 몸대로 버리고,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뻔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에, 나는 엄마가 보고싶었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 혼자 방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했다. 내가 진짜 사기를 당한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그냥 포기하고 한국을 가야하나? 그렇게 혼자서 3시간을 넘게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나 숙소에서 이미 1차 패닉이 왔던 나는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무서운 마음을 꾹 누르고, 매니저의 방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더이상 일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나의 의사를 전했다.
혹시나 거친말이 돌아오는 건 아닐까 했지만, 매니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나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한동안 장황하게 말을 시작했는데, 보증금을 전부 돌려 줄 수 없다는 말을 길고 어렵게 하고 있었다. ‘네가 3일 있었지만, 내가 픽업도 해주고 숙소도 제공했고 밥도 주고 일자리도 제공해 줬다’ 대충 그런 취지의 말이었다.
결국, 나는 겨우 250달러의 보증금만 돌려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돈을 얼마를 되돌려 받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 곳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단 3일. 계획대로 흘러가던 워홀의 기쁨과 나의 자신감은, 번다버그에 온 지 3일만에 모두 사라졌고 무너져 버렸다.
나는 다시 브리즈번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표값 50불을 내고 나니 수중엔 200달러만 남아 있었다. ‘이제 정말 어떻게 하지..’ 망가진 몸과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계속 무너지는 생각만 들었다.
‘갈 곳도 없어. 돈도 없어. 한국에 갈래’ 라는 마음과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하는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이 반복됬다. 10분 후 브리즈번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역에 도착하자, ‘이대로 공항으로 가버릴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하지만, 호주 워홀은 내가 고등학생때부터 꿈꿨던 버킷리스트였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마침내 나는 최종 결심을 하고 예전에 묵었던 백패커로 발걸음을 옮겼다.
‘딱 일주일만 더 있으면서 생각해보자!’
To be Continued…

브리즈번 → 3일의 번다버그 → 다시, 브리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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